S STORY 

실력으로 무장하고 제자리 지키며  

순간을 사수하라

사람 살리는 중환자의학 전문의로 우직하게 한길 가는 김영삼 교수

재작년 겨울이 끝나갈 무렵 김영삼 교수(호흡기내과)는 엄청난 일을 겪었다. 20년 가까이 365일 세브란스병원 내과계 중환자실 전담의로 환자를 돌보던 그가 덜컥 환자로 중환자실에 2박 3일을 누워 있게 된 것. 그를 그렇게 만든 주범은 겨울 빙판길의 후폭풍으로 생긴 다리뼈 골절이었다. “통증이 진짜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진통제 끊으면 안 된다고 아주 통사정을 했다니까요.” 중환자가 되어보니, 의사로 오갔던 중환자실이 판이하게 달라 보였다. “그후론 진통제를 찾는 환자가 있으면 당장 처방하도록 바꿨지요.” 그 밖에도 시정하고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몸소 겪은 중환자실의 숨어 있는 빈틈을 채우며, 그는 한 걸음 더 깊이 환자 곁으로 다가갔다. 

에디터 이나경 포토그래퍼 최재인

김영삼 교수 프로필 바로가기 


중환자의학을 전공한 세부전문의 1세대로, 2008년부터 줄곧 중환자실을 지키고 계십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부담감과 피로감이 상상됩니다.   

 처음 5년 동안은 교대 인력 없이 혼자 하느라 무척 힘들었는데, 지금은 인력이 보강되어 많이 나아졌습니다. 예고 없이 발생하는 응급상황에는 무조건 달려와야 하긴 하지만요. 중환자의학 세부전 문의는 환자를 실제로 살릴 수 있는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람을 느끼며 어려움 속에서도 버티는 거죠. 미국이나 유럽의 중환자실 의사들은 주/야간 팀으로 나눠 교대 근무를 하고, 1년에 4개월은 반드시 쉬어야 합니다. 의사의 번아웃을 방지하기 위해서죠. 그래야 중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을 만큼 중환자실 의사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도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3년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위험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세브란스 중환자실은 그 여파로 어려웠던 부분은 없었나요? 

 다행히 세브란스는 이미 충분히 대비된 상황이었습니다. 코로나19 훨씬 이전부터, 국가적 지원도 사람들의 관심도 없을 때 이미 많은 비용을 들여 감염병동을 만들고 음압격리병실을 갖췄습니다. 그래서 2005년 메르스때 잘 대처할 수 있었고, 그 후 공기로 전염되는 신종 감염병 발생을 대비해 더 철저하게 준비했지요. 덕분에 코로나19 상황에서 준비된 시설과 의료역량으로 잘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코로나19 같은 신종 감염병은 중환자 치료의 전문 역량을 갖춘 의료진이 얼마나 확보되어 있느냐가 중요하고, 그것은 곧 환자의 치료 성적과 직결됩니다. 그래서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많은 숙련된 전문 인력 확보와 교육이 중요한 과제임이 분명해졌습니다.


숙련된 전문 인력 확보야 더 강조할 필요가 없을것 같지만, 고강도인 중환자실 여건을 생각하면 지원하려는 의사가 많지 않을 것 같은데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의료현실은 열악한 편이라 중환자의학을 전공하려는 이들이 정말 적습니다. 서울에서도 찾기 힘든데, 수도권이나 지방은 더 심각하지요. 정부에서 개선책을 내놓긴 했지만, 여전히 어렵고요. 예전에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치료하는 것이 의사의 존재 가치와 사명이라 생각했지만, 요즘 의사 개인에게 그것을 기대하기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의사의 소명을 강조하고 가르쳐도 “그래도 교수님처럼은 못 살아요”라는 이야길 후학들에게 자주 들었습니다. 후학들의 선택을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그래도 뭔가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요즘 가뜩이나 필수의료인력이 부족하다는 치명적인 지적이 줄곧 제기되고 있는데요. 

 제가 얼마 전 3개월 안식월을 가졌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물론 바닥까지 지친 몸과 마음의 회복도 필요했지만, 후배들에게 중환자의학을 해도 이렇게 행복하게 의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제 바로 아래 후배들에겐 중환자의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설득해서 그들이 이 분야를 선택해 지금의 중환자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워라밸을 가장 중시하는 요즘 세대는 소명만으로는 안 통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제가 직접 워라밸을 보여주는 거죠. 이쪽을 선택해 의사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면서 개인의 행복도 누릴 수 있도록 근무환경을 바꿔주는 것도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달리 의학교육에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알렌의학교육상을 수상하셨지요. 후학들에게 가장 강조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연세의대가 제정한 최고의 교육 관련 상이라 꼭 받고 싶었고, 그만큼 개인적으로는 매우 기쁜 일이었습니다. 훌륭한 후배들을 키워 더 많은 환자들을 살리는 일은 대한민국 의학 발전과 미래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니까요. 안타깝게도 요즘 의대생들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 현실이 진로를 선택할 때 경제적인 부분이 1순위입니다. 아마 이런 경향은 더 심해질 겁니다. 저는 당장 눈앞에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전공을 선택하라고 강조합니다. 설령 그것이 지금은 전혀 좋아 보이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엔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세상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해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신영복 선생의 말을 믿습니다. 제 삶이 그래왔던것 같아요.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분야를 지원해 일한 덕분에 죽음의 위기에 있던 많은 분들을 살려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고, 그 기쁨으로 오랫동안 우직하게 버틸 수 있었습니다.


중환자실을 지켜오신 교수님의 바탕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중환자실에 있는 의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중환자의 특징이 여러 질환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니까 중환자실 전문의는 최신 지식을 기본으로 무장함과 동시에 여러 과의 지식을 두루 다 잘아는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이곳 특성상 기민하고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환자를 위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렇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런 마음이 바로 두 번째 중요한 요건인 인성이죠. 그런데 실력도 인성도 다 갖췄지만, 정작 환자에게 가장 의사가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중환자실 전담의로서 제자리를 지키며 적절한 순간에 바로 치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숙련된 중환자실 의료진 양성 외에 앞으로의 과제로 삼고 수행하시는 연구는 무엇인가요? 

 중환자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환자를 직접보고 진찰하는 것이지만, 환자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다면 더 나은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중환자실 환자에게 위험한 신호가 있다는 것을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미리 읽어내고 예측한다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은 더 많지요.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조기 발견해 적절한 대응을 취하는 겁니다.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어 조만간 도입될 거라 예상합니다. 


명의의 특강

연명의료 바로 알기

생명만큼 소중한 존엄성을 

신중하게 지키는 치료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운영 중이다. 환자의 소중한 생명과 그만큼 소중한 존엄성을 다루는 결정이기에 매우 신중한 절차들로 진행된다. 

 김영삼 교수(호흡기내과)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어 진통제로 통증을 조절하며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말기암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 병원에 입원했고, 가족이 있는 곳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심정지가 왔고, 가족들은 그를 중환자실로 옮기고 생명 유지 장치를 통한 생명 연장을 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환자는 깨어나지 못한 채 치료를 계속하다가 중환자실에서 홀로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생의 마지막에 선 환자를 존중하는 치료   

 환자가 겪는 고통에 공감하고 환자가 내린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위의 사례처럼 가족 혹은 의사가 환자의 뜻에 반해 생명 연장을 결정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환자 본인의 뜻을 존중하고 고통을 줄여서, 존엄성을 유지하며 임종을 맞이하도록 돕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환자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고 가족의 반대로 인해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원치 않는 치료를 받다 임종을 맞이하는 안타까운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고 가치지만, 환자가 존엄성을 지키면서 임종을 맞이하도록 도와주는 것 역시 중환자실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말기 환자,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주어지는 선택    

 연명의료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시행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그리고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인 체외생명유지술(ECLS),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를 말합니다. 그 밖에 담당 의사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시술이 모두 포함됩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을 적용받는 환자는 말기 환자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로 나뉜다. 말기 환자는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증상이 점차 악화해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진단을 받은 환자입니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는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이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증상이 급속도로 악화해 사망에 임박한 상태로 판단한 환자를 말합니다. 


미리 준비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치료 불가능한 말기 질환 진단을 받거나 회복 불가능 상태에 빠진 상황이 아니더라도 죽음에 대해 미리 고민하고 준비해 본인의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고 싶을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19세 이상 성인은 누구나 작성 가능하고, 공인된 기관에서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해 보관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고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는다거나 중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의사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라는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 판단을 죽음에 임박해서 하면 환자가 적절한 임종 돌봄을 받을 기회를 놓칠 수 있고, 반대로 너무 서두르면 부적절한 판단을 하거나 환자에게 필요한 의학적 치료와 회복의 기회를 제공할 수 없으므로 담당 의사와 전문의 1인이 함께 신중하게 판정합니다. 

이후 해당 환자 또는 환자 가족에게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있고 환자가 의사 판단 능력이 있으면, 담당 의사 또는 전문의가 함께 의향서 등록 여부를 확인하고 사전 계획한 연명의료 의사를 재확인합니다. 이때 환자가 사전연명 의료의향서 내용 변경을 원하면, 환자가 원하는 내용으로 함께 연명의료계획서를 새로 작성합니다. 


의식이 없는 경우, 환자 가족과 신중하게 결정

 중환자실로 오는 환자들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말기 환자 또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치 않거나 중단을 요청하면,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담당 의사와 함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환자가 의식이나 의사 판단 능력이 없고, 미리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때는 환자 가족 2인 이상이 연명의료에 관한 환자의 의사를 동일하게 진술하면, 이를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가 확인하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진술과 배치되는 내용의 다른 환자 가족 진술, 또는 환자 본인이 직접 작성한 문서나 녹음물, 녹화물, 이에 준하는 기록물에서 스스로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명한 객관적 증거가 있는 경우에는 환자의 의사로 추정하지 않습니다. 

환자가 의사를 직접 표현할 수 없는 의학적 상태이고,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거나 추정할 수도 없을 때는 환자 가족 전원이 합의한 경우에 한해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내리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이때 가족은 19세 이상의 성인으로 배우자, 1촌 이내 직계 존비속, 2촌 이내의 직계 존비속입니다. 만약 이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으면 형제자매까지 포함합니다. 



김영삼 교수

호흡기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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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세브란스병원> 2023년 12월호